최근 세계 각국이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에 대한 법적 규제와 제도적 기준을 마련하기 시작하면서, ‘스테이블코인 조례(Stablecoin Regulation)’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나 실물자산의 가치를 1:1로 연동해 가격 변동을 최소화한 디지털 자산으로, 빠른 송금과 결제, 탈중앙 금융(DeFi)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편의성 뒤에는 통화 주권 약화, 자금세탁, 담보 불투명성 같은 위험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스테이블코인 조례’**를 제정하거나 법률을 개정하여 디지털 금융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조례의 등장 배경, 주요 내용, 그리고 향후 통화 제도에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1. 스테이블코인 조례란 무엇인가?
‘스테이블코인 조례’란 국가 또는 지방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운용과 관련된 법적 기준을 명확히 규정한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쉽게 말해,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이 불투명한 담보 구조나 비규제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것을 막고, 금융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디지털 자산 관리법이라 할 수 있다.
이 조례의 목적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 투명성 확보: 발행사가 보유한 담보 자산을 주기적으로 공개하고 외부 감사를 받도록 함.
- 소비자 보호: 이용자가 언제든 안전하게 법정화폐로 환전할 수 있도록 유동성 확보를 의무화함.
- 통화 주권 유지: 스테이블코인이 자국 통화 시스템을 대체하지 않도록 발행 한도 및 승인 절차를 강화함.
2.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필요성
스테이블코인은 혁신적인 결제 수단으로 평가받지만, 관리되지 않는 상태에서 확산될 경우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첫째, 담보 불투명성 문제다. 일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실제로 충분한 준비금을 보유하지 않은 채 코인을 발행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대표적인 예로, 테더(USDT)는 준비금 보유 비율과 회계 보고서 공개 문제로 꾸준히 의심을 받아왔다.
둘째, 자금세탁 및 불법 자금 이동 문제다. 스테이블코인은 국경을 넘는 송금이 쉽고 거래 추적이 어렵기 때문에, 범죄 조직이나 탈세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통화 주권 약화다. 국민이 자국 통화 대신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주요 결제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이나 통화 공급 조절이 무력화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각국은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률 및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3. 해외 주요국의 스테이블코인 조례 및 법안 사례
(1) 미국 – 발행사 등록 및 준비금 의무화
미국은 2024년 기준으로 ‘스테이블코인 책임법(Stablecoin TRUST Act)’과 ‘클래리티 법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법안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반드시 연방 규제 기관에 등록하고, 발행액과 동일한 수준의 현금 또는 국채 담보를 예치하도록 의무화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발행이 중단되거나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회계 보고를 분기별로 공개하도록 하여 이용자의 신뢰를 높이고 있다.
(2) 유럽연합(EU) – MiCA 법안
EU는 세계 최초로 포괄적인 가상자산 규제 법인 MiCA(Markets in Crypto-Assets) 를 2024년부터 시행했다. 이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을 ‘전자화폐형 토큰(EMT)’으로 정의하며,
- 발행사는 반드시 **유럽은행감독청(EBA)**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 준비금 자산을 유럽 내 은행에 예치해야 하며,
- 1일 결제 한도 2억 유로를 초과할 경우 자동으로 규제 대상이 된다.
이는 사실상 유럽판 스테이블코인 조례로 평가받으며, 국제 금융 시장의 표준이 되고 있다.
(3) 일본 – 법정화폐형 스테이블코인 허용 조례
일본은 2023년 개정된 자금결제법(改正資金決済法) 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합법화했다. 단, 발행 주체를 은행·신탁회사 등 금융기관으로 제한하고, 고객 보호를 위한 환전 보증 장치를 마련했다.
이 조례를 통해 일본은 “규제 속 혁신”이라는 균형 모델을 제시했다.
4.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
한국에서도 스테이블코인 제도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2025년 기준으로 ‘가상자산업권법’과 별도로 스테이블코인 관리 체계를 구축 중이다.
현재 논의 중인 방향은 다음과 같다.
- 발행사 인가제 도입: 일정 규모 이상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면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도록 함.
- 담보 자산 의무 예치: 발행액 100% 이상을 은행 예치금 또는 국채로 보유해야 함.
- 소비자 보호 및 환급 제도: 코인 가치가 하락하거나 발행사가 파산할 경우, 법정화폐로 즉시 환급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
또한, 한국은행은 디지털 원화(CBDC) 실험과 병행해 스테이블코인의 결제 안정성을 평가하며, 국가 통화 주권을 지키면서 민간 혁신을 수용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5. 스테이블코인 조례가 가져올 변화
스테이블코인 조례가 본격 시행되면, 다음과 같은 변화가 예상된다.
- 시장 투명성 강화: 발행사의 자산 운용이 공개되고, 회계 기준이 명확해져 신뢰도가 상승한다.
- 금융 안정성 확보: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조화를 이루게 된다.
- 혁신의 제도권 편입: 규제를 충족한 발행사만이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어, 건전한 디지털 금융 생태계가 조성된다.
즉, 스테이블코인 조례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디지털 금융 질서를 만드는 기틀이 된다.
6. 향후 과제와 전망
스테이블코인 조례의 궁극적 목표는 ‘금융 혁신과 공공 신뢰의 균형’이다. 규제만 강화하면 민간 혁신이 위축되고, 규제가 없으면 시장 불안과 통화 주권 침해가 발생한다.
따라서 향후 과제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국제 공조 강화: 스테이블코인은 국경을 넘는 자산이므로, 국제 기준과 공조 체계가 필요하다.
- CBDC와의 공존 전략: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스테이블코인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도록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 소비자 보호 강화: 투자자와 이용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환전 및 손실 보상 시스템을 명확히 해야 한다.
7. 결론
스테이블코인 조례는 단순한 디지털 자산 규제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화폐 질서의 설계도이자, 국가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다. 각국이 이 제도를 통해 민간 혁신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 신뢰 가능한 디지털 경제 기반을 마련한다면,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금융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화폐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앞으로는 ‘누가 더 빠르게 기술을 도입하느냐’보다 ‘누가 더 현명하게 제도를 설계하느냐’가 금융 패권의 승부를 결정할 것이다.